친애하는 나의 봄에게.
마지막으로 편지를 보낸 뒤로 시간이 꽤 지났습니다. 어느덧 겨울이 옷자락을 거두고, 봄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요. 무겁던 겨울외투를 슬슬 집어넣어야 하나 봅니다.
걸음이 느린 겨울이 행여 당신께 감기라는 친구를 남기고 갈까봐 등을 떠밀어주고 왔는데 건강은 괜찮으시리라 믿어봅니다. 드리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런 불청객같은 친구와 함께 보시기엔 적절치 못하다 생각이 되어서요.
가슴 안 쪽에 한참 고여있던 말을 어떻게 꺼내야할지 알 수 없어, 지난 밤을 창 밖의 별과 함께 밝혔습니다. 그런 밤이 제게 단 하루의 이야기만은 아니었음을, 양초의 촛농이 모두 녹아내려 샛별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시간 동안 아무것도 적지 못한 채 그저 나의 봄을 떠올리던 밤이 수없이 많았음을, 이제는 고백할 수 있겠습니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저울로 잰다면 저보다 무거운 마음은 없을 것임을 감히 자신하겠습니다. 땅 아래에 묻혀 싹 틔울 날 기다리는 씨앗보다, 굴 속에 파고들어 겨울잠 자는 동물보다, 찬 바람에 나날이 기침하는 이들보다 나의 봄을 향한 제 그리움이 배로 클 것입니다.
그러니 나의 그리움이, 기다림이 숨길새도 없이 새어나옴을 사죄드립니다. 한낱 인간으로서 감히 봄을 부르고자 합니다. 이런 마음이 당신에게 누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저어한 수많은 순간보다 너덜해진 제 가슴을 먼저 챙기는 이기심을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겨울바람과도 같은 무정한 시간이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울 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외투 사이로 솔솔 새는 냉기가 전염되기를 간절히 바랐으나... 나의 봄, 나의 사랑. 거부한다고 하여 봄이 옴을 막을 수 없는 이치로, 나는 당신을 연모하게 되었습니다.
미처 떠나보내지 못한 겨울, 이 계절 내내 저를 서럽게 만들었던 사랑을 차갑게 얼어붙은 손끝으로 적었습니다. 다만 뒤늦게 드는 염려는 제가 오래도록 품어왔던 이 눈꽃이 당신의 마음마저 시리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친애하는 나의 봄,
아니, (지워진 글씨.)
(지워진 글씨.)
(지워진 글씨.)……
애달픈 마음을 당신의 이름에 꾹꾹 눌러담다가도, 그 마음 한 방울이 새어나와 당신을 아프게 할까 덮어버리는 내 심정을, 나의 봄은 알고 있을까요.
아니요, 모르셔도 좋습니다. 모르셔야 합니다. 당신은 내게 사랑하라 말하지 않았고,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오직 제 의지니까요. 인간이 봄을 사랑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인 탓입니다. 당신 앞에 설 때면 저는 항상 초라함을 느끼곤 합니다. 당신께서 보여주시는 따스함이 과분하게도 아름다워서...
...그래서 늘 시릴 줄 알았던 손이 당신이 건네준 따스함으로 조금씩 움직이는 새로운 겨울의 끝, 감히 청컨대 친애하는 나의 봄인 당신이 비워둔 제 다음 계절의 자리를 채워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와주시길 바라도 괜찮을까요?
어떻게 마무리지어야 할 지 모르겠어요. 그저 죄송할 따름입니다.
사죄와 사랑을 보내며,
벨라도나 올림.
'로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 아그네스 기숙학교에는 항상 소문이 돈다. (0) | 2020.06.18 |
---|